클로드 모네〈개양귀비꽃〉1873년, 50×65cm, 오르세 미술관 5층 29번 전시실 전경의 여인이 입고 있는 푸른 옷과 푸른 양산, 그리고 이제 막 비가 그쳐 더 청량해 보이는 푸르른 봄 하늘이 붉게 물든 개양귀비꽃과 한층 더 또렷하게 대비된다. 줄기가 안 보이는 개양귀비꽃들은 마치 나비처럼 긴 풀 사이를 점점이 날아다니는 듯하다. 오른쪽의밀밭은 미풍에 물결치듯 부드럽게 흔들린다. 그림의 절반을 차지하는 하늘과 흰 구름은 모네가 보불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갔을 때 본 존 콘스터블의 풍경화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. 관람객은 어느새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저 여인처럼 초원을 산책한다.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지고, 붉은 꽃이 다리를 쓰다듬는다. 아이는 이 짧은산책을 기억하고 싶어 꽃다발을 만든다. 그 당시 유행하던 밀짚모자와 우산을 쓴 여성은 모네의 첫 번째 부인인 카미유이고 소년은 큰아들 장(당시 여섯 살)으로 추정된다. 모네가 이제 막 익히기 시작한 인상파 화법이 밝은색깔, 하늘, 움직이는 구름, 인물의 간략한 묘사 등을 통해 드러나 있다.그의 터치는 색들을 병치하고 교차시켜 ‘움직이는 것과 순간적인 것’을 표현해 낸다. 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인, 혹은 사회학적 해석이 필요 없다. 관람객은 이 작품에동조하며 순수하게 감동한다. 이것이 시간과 공간을초월하여 보는 사람의 시선과 마음에 곧장 와닿는 이유다.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이재형